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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umis AI가 요약한 글
- 현실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육아와 결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어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 특히 '결혼지옥', '고딩엄빠' 등의 프로그램은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여주며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높은 사회적 비용과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며, 제작자들의 책임감 있는 콘텐츠 제작이 중요하다.
[허영주의 크리에이터 세상]
범람하는 육아 결혼 혐오 조장 콘텐츠
시청률 좇는 극단적·자극적 사연 초점
최악 배우자 고발하는 결혼지옥 방송
2023년 올해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K 인구 대기획 초저출생"에서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 조앤 윌리엄스가 한 이 발언이 ‘밈’이 되었다. /나무위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Korea is so screwed) ”
2023년 올해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K 인구 대기획 초저출생"에서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 조앤 윌리엄스가 한 이 발언이 ‘밈’이 되었다.
이 ‘밈’은 점점 더 현실화하여 가고 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0.6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저출산 문제를 심각한 과제로 안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제는 다양하다. 인구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서울 공화국’ 문제, 가부장적 가족문화로 여성에게 일과 가사 육아가 집중되고 긴 근무 시간 속에서 교육까지 여성 몫이 되며 육아를 꺼리게 된 문제, 높은 부동산 가격과 육아비 등등.
다양한 원인 중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이야기하고 싶은 문제점은 ‘육아 결혼 혐오 조장 콘텐츠’다. 이미 위의 커다란 문제들로 불이 났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데 공포감을 심어주는 콘텐츠가 난무하고 있다.
‘결혼지옥’ ‘금쪽같은 내 새끼’ ‘고딩엄빠’를 보며 결혼과 육아에 꿈과 희망을 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판타지를 보여주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위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출연자들의 예시들이 지극히 극단적이라 이것이 육아와 결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고딩엄빠4’에 아이 셋 아빠가 다 다른 사연으로 출연한 오현실 씨 /유튜브 캡처
최근 가장 충격적인 영상은 ‘고딩엄빠4’에 아이 셋 아빠가 다 다른 사연으로 출연한 오현실 씨의 영상이었다. 그녀가 믿고 사랑한 첫 아이 아빠는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두 번째 아이 아빠는 절도죄로 교도소에 들어갔으며 마지막 세 번째 아이 아빠는 입버릇처럼 ‘우리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는데 임신 사실을 밝히자 태도가 돌변해, 절대 책임을 못 진다며 그녀를 떠나버렸다.
건강한 관계를 보고 배우고 자라도 모자랄 시기의 ‘청소년’들이 주로 보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스토리를 통해 제작진은 무엇을 얻길 바랐을까. 방송사 홈페이지 속 고등학생엄빠의 제작 의도는 이러하다. ‘새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기특한 선택을 한 이들의 실제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오현실 씨의 셋째 아이는 양육비와 경제 상황의 문제로 인해 보육원에 맡겨져 있고 “엄마와 우주만큼 같이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새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기특한 선택을 한 이들의 실제 생활’을 이렇게 처참하게 보여주었어야 했나 생각한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연합뉴스
결혼지옥에서는 온갖 종류의 최악 남편과 아내의 케이스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선 넘은 부부', '섹스리스 부부'의 사연 자체가 결혼에 대한 희망보다 절망을 선사했다고 평했다.
케이스가 충격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시청률과 조회수는 올라가겠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호도는 두려움과 함께 내려갈 수 있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가 밈으로 퍼질 정도의 위기 속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은 책임감을 느끼며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숨을 헐떡이는데, 도와주는 이들이 없다. 모두가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방송사는 조회수를 보장하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우선이다. 그들이 심어놓은 엄청난 두려움을 겨우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결혼이란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원가격에 2~3배 가격을 받아 그동안 모아둔 돈을 다 탕진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웨딩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은 정상적인 월급으로는 절대 얻지 못할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대출의 굴레’로 이끌려 들어간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지치는 과정을 마쳐야만 ‘육아’라는 영역에 들어갈 자격증이 주어진다.
아. 탈진이다. 더 이상 못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높은 허들들이 청년들에게 "차라리 망하자. 망해버리자"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저출산’이란 단편적인 결과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야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빠르게 성장한 대한민국이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국민 전체가 번아웃 상태인 느낌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이지만, 먼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을 위해선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음속으로 포기한 사람에겐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육아 결혼 혐오 조장 콘텐츠’를 멈추고 ‘희망’ 한 줌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자.